자유토크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 - 삶에 대한 순응의 의미(반전의미, 내용분석, 감상)

momommo 2014. 11. 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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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느 신문 사설에서 읽은 글귀이다. 1960년대에 유럽의 인류학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고 미래에는 남녀가 각기 인생을 살면서 평균 3번의 결혼을 경험하게 될 거라고 예측했다. 이는 곧 현실이 되어 많은 유럽의 커플들이 결혼과 이혼을 경험하고 있다. 그 신문의 사설은 황혼 이혼을 주제로 한 글이었으나 이번 포스팅에서는 Gone Girl 서 보여지는 부부가 가지게되는 감정적인 소진에 대해 말하고 싶다.



데이빗 핀처가 연출을 맡은 Gone Girl 은 영화 진행부 내내 그가 연출해온 영화의 스타일을 느낄수 있다. 에일리언3, 세븐, 파이트 클럽으로 이미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연출자가 된 이 감독은 자신만의 확고한 영화의 색을 가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가 연출한 영화의 대부분에서 행복한 부부는 등장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커플은 있으나 행복한 부부가 된 주인공들은 없다. 패닉룸, 파이트 클럽, 세븐 등 어딘가 삐뚤어진 애정, 이혼 등이 그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사랑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요소에서 데이빗 핀처는 어린나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매우 현실적으로 알게된 성장배경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이미가 폐쇄된 공간에서 느끼는 공포는 패닉룸

무표정한 표정으로 살인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모습은 조디악

웃지도 못할 사기극이 되어버린 사건을 여러 조연의 눈으로 보여주는 담담한 모습은 벤자민버튼과 소셜네트워크의 체취가 풍긴다







그의 성공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Gone Girl 은 탄탄하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소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드라마에서 씁쓸한 웃음을 주는 블랙코미디의 색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영화로 완성되었다. 길리언 플린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시나리오는 원작자가 직접 시나리오를 각색하였으며 연출자로는 데이빗 핀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하니 더욱 그들의 조합이 빛나게 되는 결말을 가져왔다.


소설의 대중적인 성공은 바로 이러한 감정의 소진을 가진 부부들이 많고 여기에 공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얻은 찬사라는 반증이다. 많은 연인들이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현실을 직시해가며 점점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 더이상 이성이 아닌 한 가족으로 느끼게 되는 이야기는 슬픈 베드엔딩일까 아니면 해피엔딩일까? 영화에서 중간중간 과거로 플래쉬백되는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서로를 사랑했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그들은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너무 잘알고 있기에 어떤면을 사랑하기도 하며 증오하기도 한다. 이런 잔잔한 감정이 유지되는 그 둘의 사이에 작은 파문의 돌을 던진 것은 서로가 아닌 세상이다.





영화의 러닝타임은150분으로 꽤 긴편이다. 하지만 이 긴 시간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고  전개를 궁굼하게 만드는 관객과의 밀고 당기기는 근래 영화에서는 결코 느낄수 없는 감정을 경험하게 한다.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볼수 있는데 드라마와 스릴러로 나뉘어지는 반절의 분기에서 하나의 가벼운 반전이 그리고 영화의 결말에서 관객들이 가지게 되는 마지막 반전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오프닝에서 벤 애플렉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직접적인 살인욕구에 대한 충동이 아닌 아내라는 존재에 대한 증오와 궁금증이었으나 영화를 다보고 난뒤에는 그것이 후자가 아닌 전자였음을 관객들이 알게 된다. 가장 근접하고 서로를 잘아는 부부 관계에서 사랑이 사라진 그 둘에게 부부관계가 가져오는 감정은 극명하다. 남편인 닉 던은 폭력과 분노 그리고 공포를 부인인 에이미가 느끼는 감정은 그저 남들에게 보여지는 표면적인 행복감이다.





영화 중반 쇼프로그램의 아나운서는 소시오패스라는 단어를 언급한다. 사회적 감정의 결여라는 정신병을 나타내는 이 단어는 이들 부부 둘다에게 해당된다. 영화 후반부 사랑이란 감정을 잃어버렸지만 망설이며 에이미의 손을 잡는 닉과 살인을 해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는 에이미는 너무나 다른듯 닮아있다. 




짧은 순간에 급속도로 서로를 알게되는 결혼생활, 그리고 금전적인 문제가 가져오는 감정의 결여. 이둘에게는 삶과 죽음을 오갈 정도로 강렬한 스트레스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가벼운 가쉽거리, 농담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주변인들에 비춰진 이들의 모습은 이정도다.


싸늘한 부부생활과 그 파경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의 뒷면에는 각각 캐릭터와 부모가 얽혀져 있는 영화의 또 다른 주제가 담겨있다



먼저 에이미의 부모 또한 소시오패스다. 그들은 딸의 실종소식에도 너무나 초연하게 홈페이지 제작, 자원봉사 센터등을 설립하였고 미디어를 아주 잘 활용한다.(본인은 에이미와 부모를 공범으로 생각했었고 그럴 가능성이 약간은 존재한다고 본다)

그 둘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서로 붙어서 행복한 부부로 주변에 보여진다. 물론 그 둘이 정말 뜨겁게 사랑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시오패스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그들은 사랑이란 감정을 모르기 때문에 돈독한 것이고, 에이미를 어메이징하게 육성한 성공하고 행복한 부모로 보이기 위한 목적이 주일 것이다.


TV에 나온 닉은 완벽하게 매력적인 남성이다. 이것은 에이미가 그간 조종해왔던 남자들에게서는 얻지 못한 것이었으며, 그 조종의 의도를 알았건 몰랐건 닉은 그녀의 다른남자들과는 다르게 그녀에게 순응하며 그녀의 사람이 되었다.(닉은 이것이 사랑인 줄 알았지만) 

 에이미에 의해 만들어진 닉은 그녀의 부모가 만들어오고 돈벌이로 이용했던 "어메이징 에이미"와 같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그랬듯이 그녀 또한 닉과 자신의 부부생활을 또 다른 어메이징한 이야기로 만들어 자신의 자아실현에 이용한다.


닉 또한 부모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화목해보이나 극 중 마고는 닉을 가르켜 "이게 뭐야, 아빠와 다를바가 없는 쓰레기잖아"라는 대사를 한다. 닉은 내면에 아버지를 증오하고 아버지를 닮고싶지 않아하는 자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고 그녀에게 순응하는 그녀를 위한 삶을 산 모습을 보여준다.(어머니가 겪었던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또한 극중 마고가 남자친구도 없이 혼자사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닉은 아버지를 증오하고 닮지않으려 했지만 결국 바람을 피고만다.


닉은 아기를 원했지만 에이미는 거부했다.

닉은 에이미에게 아기가 생기자 책임감때문에 이혼을 하지 못했다.

에이미는 아기를 원하지 않았다.

닉을 붙잡기 위해 동의없이 몰래 임신을 했다.

 

연출자가 "아기"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단순하다. 부부의 아기는 사랑의 결실이자 종착점이지만 온갖 역경을 거친 영화 종반 이제 이 둘에게는 아기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이쯤되니 영화 중간 중간 이야기되는 혼전계약서의 의미가 궁금하다. 아마 원작 소설에서는 표현이 되었으리라)


중간중간 과거를 보여주는 플래쉬백, 그리고 거짓으로 꾸며진 에이미의 일기와 독백과 반전. 이 영화는 복잡하다. 그외에도 스토커, 경찰, 내연녀, 이웃주민들 조금더 파고들면 재미있는 요소가 많이 내포되어 있다. 탄탄한 원작의 깊이를 느낄수 있으며 이런 요소들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 Gone Girl 은 웰메이드 영화라고 생각된다.




영화의 마지막 에이미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눈빛의 의미는 무엇을까?



닉이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바람을 피는 것은 잘못된 행동, 사회가 인정해주지않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런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고 있건 아니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한 방향을 제시받고 살고 있다. 아니라고 부정해도 닉과 에이미가 인지하지 못하는 그들의 내면처럼 우리 또한 순응해야하는 삶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그 순응이 가져오는 삶은 영화가 끝난 뒤에 찾아오는 닉의 삶도 아니며, 영화내내 에이미가 벌이는 쇼같은 삶이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지금 내가 제대로 된 삶을 살아 가고 있는가?




마지막 그녀의 눈빛은 그 선택에 대한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되는 계기를 갖게 해준다.


"영화를 보고 있는 바로 당신, 지금의 삶에 순응하고 살 것인가?"




나를 찾아줘의 원제는 Gone Girl

직역하자면 그녀가 사라졌다, 그녀가 떠나갔다, 떠나간 그녀 정도가 될 수 있겠다. 

유일하게 영화에서 맘에 안드는 부분이 바로 이 제목.


lost in translation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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